3. 제도 외적 개혁
제도의 개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제도 만능주의적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제도의 개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자금 문제의 개혁, 돈 안 드는 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에 앞서 해결되어야 할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1) 정치권의 자성
먼저 정치권이 정치자금 문제에 접근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자금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멀리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르지만 정치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자금의 총 규모를 축소하는 등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정치자금 관련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정치자금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야당 일각에서는 정치자금과 관련된 정치 외적 요인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치자금법의 개선과 처벌의 강화는 야당만 불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즉, 정치자금 수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야당 후원인이 사정기관과 국세청 등에 의해 보이지 않는 탄압을 받게 될 것이며 이는 야당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부패는 정치권만의 문제는 아니며 사회 전체의 부패구조가 돈을 써야 하는 정치문화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의 정화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다른 집단에 비해 먼저 각성하고 자성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권력의 핵심에 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계속 현실과 타협하기 위한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정치발전, 나아가 우리 사회의 발전은 끝내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비록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2) 정치자금문제에 대한 패배주의 불식
다음은 정치자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한계로 결코 달성될 수 없는 목표라는 패배주의의 극복이다. 지금은 깨끗한 정치의 대명사로 인정되고 있는 영국도 금권정치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미국도 과거에는 부패했던 정치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은 정치적 부패사건을 계기로 여론과 매스컴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정부와 의회에 대해 대대적인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현재의 정치풍토를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3) 정당활동에 대한 제한은 최소화
선거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입후보자들의 공약과 인물됨을 잘 알고 표를 던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입후보자를 찾아다니면서 공약과 인물됨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인센티브가 없다. 다행히도 입후보자는 자신을 유권자에게 알리려고 하는 충분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행 선거법은 입후보자의 유세활동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의 규제를 가하고 있다. 유급운동원의 숫자, 선전벽보의 양, 인쇄물의 종류, 현수막의 내용과 수량, 신문방송 광고 및 연설의 횟수와 길이 등이 모두 규제의 대상이다. 법을 어기지 않고는 득표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정치자금을 규제하자는 것도 정치자금에 의해 정책이 왜곡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지 정당의 활동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치자금 총액에 대한 규제만 지켜진다면 그 자금을 어떤 용도로 쓰든 그것을 간섭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각 입후보자가 지출하는 선거비용의 총액이 한도를 초과하는지 만을 감시하는 일이다. 주어진 비용 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용도에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정치활동에 대한 정보공개
정치자금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정치인들이 국회에 상정되는 법안들에 어떤 식으로 표결을 했는지가 공표되어야 한다. 또 국회에서 벌어지는 본 회의는 물론이려니와 모든 상임위원회의 상황이 T. V로 중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그리고 어느 정당에 자금과 표를 줄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정치자금 규제의 필요성
지난 한보 사태는 우리 정치의 치부를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냈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대한안경사협회 로비 사건 등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하지만 구태의연한 부패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돈 한 푼 안 받는 깨끗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측근이 이런 부정부패에 연유되고 있는데, 누가 대통령을, 정치인을 신뢰하겠는가. 바람직한 정치자금제도의 운용은 한국 정치가 해결하여야 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에 대한 해결이 없이 깨끗한 정치, 공명한 선거를 기대할 수 없으며, 동시에 민주정치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바람직한 정치자금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정치지도자의 강력한 개혁의지와 정치인의 자각은 물론 성숙한 민주시민의식, 그리고 관계 법규의 엄격한 적용이 요구된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두 명의 대통령에 관련된 비리 사건, 한보 사건 등은 우리 정치의 치부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정당·정치인·경제인·유권자 모두 뼈를 깎는 각오로 자성하여 깨끗한 정치, 바람직한 정치, 그리고 이상이 있는 정치를 위한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과거와는 달리 건전한 정치자금의 운용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며 각 정당에서 보고한 수지보고서에 증빙자료(영수증) 등이 첨부되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의 경우, 의정보고서를 통하여 정치자금에 관한 보고를 하고 있다.
이런 정치자금 보고서에 대한 국민적 감시활동, 열람 운동이 증대되어야 하며, 특히 시민단체에서 이런 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앞으로는 정치자금법을 비롯한 각종 법규를 개정하는 데 있어 당리당략이나 기득권 보호와 같은 소아병적인 사고보다는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21세기라는 거대한 세기사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공개화·최소화·공정성·균등화·공영화·자율성·준법성의 원칙과 민주정치제도의 확립이라는 철학적 바탕 하에 개선 작업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Ⅴ. 유권자의 의식개혁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이 정치권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시민단체들이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서자 유권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인들은 공천 반대 운동이나 낙선 운동을 '오만한 행위'이며‘정치 테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정치 테러를 가한 것은 정치권이고, 당한 것은 국민이다.
98년에 국회는 296일이나 문을 열었지만 회의가 열렸던 날은 54일뿐이다. 지난번 정치개혁 특위는 2년 동안 7 차례나 활동시한을 연장했지만 무슨 일을 했는가? 특위에 상정된 44개 법안 가운데 38건은 손도 대지 않았고 6건을 심의해 이 가운데 2건만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의 내용은 중앙당 및 지구당 후원회 기부한도액을 2배로 늘리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싸움만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챙기는 정치가 바로 국민에 대한 테러가 아니고 무엇인가.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 운동이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불법행위라고 정치권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입이 열 개라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선거법에 따르면 당해 4월까지 선거구를 획정지었어야 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이 법을 어기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정치권이 아닌가? 선거 때가 되면 선거법을 무시하고 불법 탈법 타락선거를 일삼는 것도 역시 정치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인들은 불법 사전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무시하고 군 가산점을 유지시키겠다고 정치권이 발버둥치는 것도 불법행위이다. 낙선운동을 위해서 발족된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는 온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총선시민연대는 15대 국회에서 활동했던 329명의 전, 현직 의원 가운데에서 공천을 받아서는 안될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의 공천반대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었다. 공천반대 대상이 공천을 받으면 낙선운동까지도 추진해나갔다. 또한 경실련은 당시 164명의 후보 공천 부적격자를 발표했었다. 그 가운데 현역 의원은 120명이니 경실련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현역 의원 3명 가운데 1명은 '문제 국회의원'인 셈이다. 각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또 지역별로 명단을 발표했었다. 시민단체들이 이제부터는 절대로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는 낡은 정치인들의 우선순위는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에 관련되었던 정치인들이었다.
군사 쿠데타나 반인권적 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정치인, 지역감정을 선동했던 정치인, 의정활동이 부실했던 정치인, 교육, 여성, 환경, 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개혁성이 없거나 악법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정치인들도 그 대상이 되었다. 지금의 선거법은 낙선운동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선거법 87조가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을 막고 있다는 사실은 시민단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죽하면 낙선운동을 추진했겠는가. 시민단체들이 왜 법을 어길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낙선운동을 벌이려 했는가. 왜 국민들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낡은 정치를 국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배신하고 당리당략이나 사사로운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이미 극에 달해있음은 정치인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자정 노력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2년이 넘도록 질질 끌어오던 정치법을 개악시켜버리는 상황이었다. 모든 사회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썩고 낡은 정치라는 데 이의를 다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사는 미뤄놓은 채 진흙탕 싸움만 벌이는 정치에 대해 국민은 이미 지쳐 있다. 정치가‘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글러가도 유권자나 시민단체는 모른 체해야 옳다는 것인가.
공천 반대운동과 낙선운동은‘고장 난 정치’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자구 노력이다. 후보 검증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바른 투표를 하려고 해도 유권자에게는 후보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 따라서 '문제 정치인'들을 가려내 유권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정치권은 시민단체들이 불법운동을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명단 발표가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87조를 어겼다는 것이다. 87조는 시민단체들이 오래전부터 폐지를 요구한 조항이다.
정치권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반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선거법 87조를 없애고,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하며,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서 좋은 후보를 공천하고, 후보자들도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시민단체도 대상자 선정 등 낙선운동의 전 과정에서 공명정대하고 투명하게 행동함으로써 시비의 소지를 없애고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선거문화의 개혁에는 유권자 개개인의 노력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투표행위란 그저 한 표를 던진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올바른 한 표를 찍는다는 의미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이 돈을 뿌릴 것을 기대하거나 돈을 받고 표를 파는 행태를 계속 보이는 한 후보들은 돈 선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깨끗한 선거문화의 정착을 위해 유권자들이 현행법과 제도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다.
1. 빠짐없이 투표하기
유권자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투표하는 것이다. 모든 유권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투표행위는 유권자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이다.
유권자가 성실하게 투표에 참여하여 선거권을 행사(통합선거법 제6조 제3항)할 것과 유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국가가 취할 것(제6조 제1항)을 통합선거법에 규정하고 있는 것도 투표권이 기본적인 참정권이기 때문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투표일에 집을 떠나 있거나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유권자도 반드시 투표에 참가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바로 부재자 투표(제38조)이다. 투표할 때에도 지연이나 혈연 또는 학연이 있는 후보를 무조건 지지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연고주의·정실주의에 따르는 투표행태가 지난날 우리 헌정사를 비틀거리게 했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또 선심공약이라든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공약을 마구 내세우는 것에 속아서도 안 된다.
2. 돈 뿌리는 후보 떨어뜨리기
불법선거운동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돈을 마구 쓰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선거를 치르기 힘든 상황이다.
철저한 공영제가 아니므로 선거에는 어차피 돈이 들게 마련이다. 문제는 꼭 돈만 쓰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표를 사고파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돈으로 표를 사려는 태도는 당선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당선 지상주의이다.
금권선거는 필연적으로 금권정치를 유발한다. 선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검은돈에도 손을 내밀게 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금권정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가장 커다란 피해를 받는 것은 바로 그 돈을 받고 뽑아준 유권자 자신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금권정치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을 심화시킨다.
선거에서 돈으로 표를 사려는 후보자를 떨어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능력을 갖춘 후보들을 지지한다면 타락한 선거풍토는 개선될 것이다. 후보자가 돈을 뿌리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돈을 받았을 경우에는 그 돈을 받아서 선거관리위원회나 민간 공명선거 추진운동기구에 갖다 주어야 한다.
3. 선거법 위반행위 고발하기
불법선거·부정선거는 단호히 거부하여야 한다. 깨끗한 선거는 유권자의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정치가 파행적으로 진행되어 온 요인 가운데 하나가 타락선거이다.
타락선거는 사실상 유권자의 동조 내지는 방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날 일어났던 타락선거의 책임으로부터 유권자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부정을 보고서도 못 본 체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선거부정을 보면 그대로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선거관리위원회나 민간 선거감시단체에 고발해야 한다. 고발의 경우 물증이 있거나 그 정황이 정확하면 더욱 좋다. 또 그같이 불법을 저지르는 후보에게는 절대로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4. 지역감정에서 벗어나기
이번 선거에서 예측되는 문제점은 우리나라 정치의 뿌리 깊은 질곡 가운데 하나인 지역할거주의가 더욱더 악화되리라는 것이다.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다.
5. 후보에 대해 관심 갖기
투표행위는 구체적인 대상을 놓고 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를 판단, 선택하는 행위이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먼저 후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후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거홍보물이나 신문광고를 꼼꼼히 챙겨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후보의 연설을 들어보는 것도 후보를 잘 알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선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참여 수준을 놓이기 위해서는 선거 연설회나 텔레비전 유세를 꼭 보아야 한다.
6. 자원봉사활동
좀 더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각 시민단체의 공명선거 감시활동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업무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선거법에 의해 모든 선거에서는 등록된 사람에 한해서 공명선거 감시단 활동을 할 수 있으며 국가에서 재정적 지원도 하도록 되어 있다.
특정 후보자를 지원하는 자원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 현행법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제85조 제2항)고 되어 있다. 다만 이 경우 그 후보에 대해 판단을 잘 내려야 할 것이다.
특정 후보에 대한 자원봉사를 할 때는 자원봉사자 모집을 빙자한 금품 수수행위 등 불법을 거부해야 한다. 자원봉사자는 통상적 범위 안의 다과와 음료만 대접받을 수 있을 뿐이다. 자원봉사자 모집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하고 봉사자로 들어올 것을 약속받거나 모집신청서를 무작위로 배포하면서 선거운동을 벌이는 사례도 있다.
돈 안 드는 선거문화의 정착을 위해 활용한다는 자원봉사자들이 후보자와의 은밀한 거래로 오히려 부정선거의 당사자로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7. 시민사회의 활성화
정치가 자꾸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불완전한 절차와 제도화, 파행적인 법 집행 및 운용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형식적 절차의 제도화만으로 정치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시민사회가 정착되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 제도가 충분히 발달한 나라들에서도 참여의 원칙을 거스르는 현상들이 일반화되어 있다.
참여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 대중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에 의해 왜곡되고 불구화된 참여, 시민이 참여하는 통제의 허구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관료, 군대 등 실질적인 권력의 가장 중요한 장치들은 어떤 민주적 통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한 정치 개혁은 현실 완성적이라기보다는 미래 완성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켜 나가야 할 미완의 형태인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가 나타났던 서유럽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 발달사는 평등한 국민의 지배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즉 민주주의는 과정의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강조되고 '민주시민이 없는 곳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시민으로 하여금 참여를 통하여 자신들이 정치의 주체임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참여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패러다임은 생명 중심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삶의 양보다는 삶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자유 보호도 필요하지만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되살려내야 한다. 이것은 시민 사회의 몫이다.
시민 사회가 이끌어갈 때 그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가를 끌어가는 힘은 제1 섹터와 제2 섹터로부터 나왔다. 공적(public) 영역이라 불리는 제1 섹터는 권력(정부)으로 국가를 움직였다.
제2 섹터는 사적(private) 영역이라 불렸지만 실제로는 돈(기업, 자본)으로 움직여온 부분이다. 사적 영역 가운데 돈과는 무관한 민간(civil) 민간 영역인 제3 섹터는 바로 도덕성과 자기 헌신성으로 국가 사회를 움직여 나간다. 앞으로는 사회를 움직여나가는 힘이 공익적 성격의 제3 섹터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사회가 정치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다.
시민사회 영역인 제3 섹터의 자율성이 국가에 의해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시민운동이 제도권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운동은 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제3섹터로 불리면서 시민운동은 개혁에 일정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시민단체의 회원은 몇 천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시민운동이 갖는 영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언론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을 시민운동이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도덕성과 자기희생에서 온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3 섹터가 주요한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국민주권주의이다. 국민의 자율적 의사와 판단을 바탕으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정당이 정책대결이 아니라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잦은 나라에서는 건전한 시민운동이 정치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자율적인 시민단체들은 국가 권력의 집중과 전제화 경향을 견제하고 다수의 횡포에 대항하여 소수의 권익 보호, 시민정신의 함양 등의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의 정립에 한몫을 할 것이다.
다수의 횡포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소수가 하나로 뭉쳐서 자신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 다수의 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키며, 민주적으로 다수를 설득하는 것은 정치발전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8. 4.13 총선 당시의 총선연대 활동의 성격과 의미
총선연대가 추진한 낙천·낙선운동은 우리의 정치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성격을 부여받게 된다.
첫째, 낙천·낙선운동은 형식적 민주화가 담보하지 못하는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지연된 시민혁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근대혁명의 실패, 식민지 경험, 타율적 해방·분단·전쟁, 군사독재 등 개항 100년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실종되어버린 시민 혁명적 과제의 복원과 도입을 의미한다.
둘째, 낙천·낙선운동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정치제도와 정치관행에 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인 시민 불복종 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운동은 국민참여보다 국민통제를 목적으로 입법된 정당 중심의 관리 통제형 선거제도에 대한 저항이자 국민을 배제한 밀실공천 관행 등 비민주적 정당구조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국민을 배제하고 대상화하는 '정당만의 축제'인 낡은 선거 관행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셋째, 이 운동은 정치권 내부의 운동이나 개혁적 권력에 의해 추진되는 운동이 아니라 권력과 정치권 외부에서 시민사회에 의해 추진된 정치개혁운동, 즉 시민정치혁명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치권의 부패 무능과 자정능력 부재를 대신해서 시민운동단체들이 정치개혁을 주도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운동은 한국정치의 특수한 상황에서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첫째, 군사독재와 재벌경제의 합작품인 '낡은 정치질서'와 등장이 지체되고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과도기적인 '가상 정치공간'에서 정치개혁을 추구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중요한 정치 행위자로 등장했다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둘째, 낙천·낙선운동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이 제한적 민주화의 추진이라는 정치상황에서 시민운동의 힘으로 60년대 이후 형성된 '낡은 정치질서'의 일각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질서'가 등장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제공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는 정치사적 의미를 가진다.
셋째, 낙천·낙선운동은 80년대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이 노동운동, 전선 운동, 정당운동, 시민운동 등 4대 운동으로 분화 발전하는 상황에서 전선 운동의 급속한 퇴조, 노동운동의 발전과 정체, 정당운동의 지체라는 조건을 비집고 시민운동이 급속하게 부각된 계기를 마련했다는 운동사적 의미를 가진다. 결과적으로 총선연대의 낙천·낙천운동은 정치관계 재편의 출발인 동시에 운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9. 총선연대 활동에 대한 평가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언론의 관심은 낙선율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낙선율은 낙선운동의 하나의 중요한 평가요소지만 결코 낙선운동에 대한 평가의 전부일 수는 없다. 따라서 낙선운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낙선율 뿐만 아니라 낙선운동 이전 단계에 작용한 공천탈락률 및 공천반대자 선정과정에서 나타난 정계은퇴 및 선거 불출마 등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불출마, 공천탈락, 낙선을 모두 고려하는 정치 탈락률의 관점에서 낙선운동에 접근해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탈락율 역시 낙선운동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지표지만, 그것 역시 평면적인 지표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총선연대가 전개한 낙천·낙선운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계량화된 정치탈락율 외에도 지역감정의 공식적 차단, 정치 및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의식변화, 선거 참여율(외형적 참여와 질적 참여를 포함)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1) 직접적인 효과 : 정치 탈락률과 정치세력교체
낙선운동의 직접적인 효과는 무엇보다도 공천 반대운동으로 몇몇 중견 정치인들의 정계은퇴 및 선거 불출마 선언을 강제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15대 전·현직 국회의원 중 사망자를 제외하더라도 20명 이상이 이번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이어 공천반대자 명단 발표 후 112명의 공천반대자 중 58명이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52%의 낙천율을 보였다. 낙선율 역시 기대 이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86명의 낙선대상자 중 59명 낙선하여 낙선율 68.6%를 보였다. 특히 수도권 낙선대상자 20명 중 19명 낙선하여 수도권 낙선율은 95%를 기록하였다. 게다가 집중 낙선대상자 22명 중 15명이 낙선하여 집중 낙선율 역시 68.2%를 보였으며, 수도권 집중 낙선대상자의 경우 7명 전원이 낙선함으로써 수도권 집중 낙선율은 100%를 달성하였다.
(2) 간접적 효과 : 정치관행의 개선
낙선운동을 준비하는 추진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간접적인 효과 중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은 부분적이나마 선거법 제87조의 개정을 이끌어낸 점이다.
이 개정으로 시민운동단체의 선거참여는 후보자의 선거운동과 구별되게 되었으며 선거기간 중 낙선운동이 가능하도록 완화되었다.
그러나 낙선운동을 기자회견 및 인터넷 사용 등 실내에 국한시킨 것은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선거구 재획정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253개의 지역선거구에서 26개를 감축하여 지역선거구를 227개로 줄이는 등 의원정수를 273석으로 줄인 것 역시 총선연대의 활동의 효과로 평가할 수 있다.
공천과정에서 민주적 공천의 기준을 제안하는 동시에 비민주적인 밀실공천의 관행에 제동을 건 것 역시 민주적 공천을 강조한 총선연대의 활동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총선연대가 제기한 공천 무효확인 소송이 법원에 의해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전북 군산 갑 선거구에 공천된 민주당 강현욱 후보의 경우 밀실공천의 위법성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 앞으로 밀실공천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3) 중장기적 효과 : 견제와 균형의 기반 확보
낙선운동은 선거 국면에서 이러한 직·간접적인 효과를 동반했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몇 가지 중요한 효과를 동반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권에 대한 시민사회의 개입 근거 및 견제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정치권의 정치독점을 차단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낙선운동과 지역감정 추방운동, 낙선운동 과정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판적 인식을 제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판이 단순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유권자의 조직된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는 효과도 발휘했다. 시민 혁명적 관점에서 국민주권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고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성과라 할 것이다.
(4) 시민운동적 효과 : 시민운동의 위상 제고와 연대망 구축
낙선운동은 정치권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낙선운동에 참여한 900여 개 이상의 시민운동단체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먼저 이번 낙선운동으로 시민운동의 사회적 위상이 강화되었으며 시민운동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나 평가 역시 매우 높아졌다.
또한 낙선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권자 참여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시민운동의 국민적 기반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과거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운동이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였다.
시민운동단체들에 작용한 개별적인 효과 외에도 지역과 부문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던 전국의 수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냄으로써 시민운동의 전국적 연대망을 구축한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10. 총선연대 활동의 문제점과 한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동반한 것은 아니다. 낙천·낙선운동은 추진과정에서 적잖은 한계를 보였으며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첫째, 낙천·낙선운동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이 운동이 애초에 대안적 정치세력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출발한 제한적인 운동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총선연대는 후보전술이나 지지·당선운동을 포기하고 공천 반대 및 낙선운동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선연대가 이 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낙천·낙선운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백하다. 정
치권이 구조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국민의 대표자를 자임하기에는 지극히 부적절한 다수의 인사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선거과정을 통해서 부패 인사를 여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순한 감시운동이나 형식적인 정책대결만으로는 정치개혁과 정치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다.
이런 점에서 낙천·낙선운동은 정치개혁을 위한 현시점에서의 불가피한 운동이자 유권자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자구적 운동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 국민적 대중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농민계급 등 민중진영과의 연대를 이루지 못한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총선연대의 공개적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국민운동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그 결과 총선연대가 유권자의 선거참여운동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 것은 아니었지만 낙천·낙선운동의 효과를 높이고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유권자 참여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매우 낮았다는 사실은 이 운동의 한계를 입증해주는 것이다.
낮은 투표율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만 총선연대 역시 운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총선연대가 지역감정 추방운동을 전개하면서 외형적으로는 지역감정의 분출을 차단했고 일부 지역에서 지역감정의 약화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지역감정의 본질적인 벽을 넘지 못한 점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영남지역에서는 지역감정 추방운동은 물론 낙선운동이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선거전략의 관점에서 반 김대중·반 민주당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총선연대의 활동을 음모론과 유착설의 관점에서 왜곡한 한나라당의 선거운동이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인 만큼 일차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러나 총선연대 역시 지역감정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접근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선연대가 지역감정의 외형적 분출을 차단한 성과는 인정해야 하지만, 지역감정이 짧은 선거과정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화되고 잠재화된 지역감정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 지역감정의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공천반대자와 낙선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적용했던 기준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부패 인사의 추방을 위해서는 이러한 기준이 반드시 필요했고 운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이나 부적절한 당파적 이해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불가피했다는 점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할 때 설정된 부패 기준을 기계적으로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 논란의 소지를 줄인 반면 후보자 개인을 대상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옥석을 구분하는 데 상당한 난점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부패행위가 사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오르지 않은 인사의 경우 부패 의혹에 대한 상당한 심증에도 불구하고 명단에서 제외된 반면 정치적 탄압이나 무리한 법 적용으로 경미한 부패사실이 과장되어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개혁적인 인사들이 명단에 포함되는 오류를 피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국회 기록의 부실함과 시간적인 촉박함으로 인해 의정활동 자료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중요한 한계로 지적되었다. 자료에 입각한 이성적 판단과 정치인에 대한 정서적 판단 사이에서도 판단의 차이가 있었으며 주요 정치지도자를 명단에 포함하는 문제도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한계는 비합리적인 정치구조 하에서 여·야 정당 모두를 대상으로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구조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재편되고,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자료와 정치지망생에 대한 정보가 좀 더 풍부해지면, 운동이 낙천·낙선운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지, 당선운동을 병행하게 되면 점차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1. 향후 시민운동의 과제
낙천·낙선운동의 한계 중에서 정치적 대안의 부재와 같은 정치 구조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들은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당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대중운동과 연대하는 과제나 지역감정을 추방하는 문제들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중장기 계획을 세워 추진할 과제이며, 충분한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역감정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운동단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된다. 이런 점들을 다각도로 고려할 때 시민운동단체들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첫째, 낙천·낙선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조했던 정치개혁의 과제를 제16대 국회 내에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총선 연대가 선거혁명을 통한 정치개혁을 강조했던 만큼 정치개혁의 과제는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다. 특히 밀실공천을 가능하게 하는 비민주적인 정당구조를 개혁하는 일, 유권자의 참여를 가로막으면서 선거부정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법을 개정하는 일,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일 등이 정치개혁의 긴급한 과제로 제기되어 있다.
부패방지법 제정과 국민소환제의 도입, 특별검사제와 인사청문회 제도의 보완 등도 시급한 과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핵심 과제들이 제16대 국회 내에 처리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 정권의 임기 동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의정감시와 의정평가를 위한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담당할 기구를 조직해야 한다. 4·13 총선거에서 총선 연대의 활동이 특수한 역사적 국면에서 필요했던 역할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는 의정활동에 평가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의정활동 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의원 및 상임위의 활동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근거하여 활동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에 의정감시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며 의정감시활동을 지원하는 의정평가연구소를 설립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수 있다.
셋째, 총선 연대의 활동을 시민운동의 기반 강화로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운동단체들은 총선 연대의 활동을 계기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과거의 평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은 내적 기반의 강화와 외연의 확대라는 두 가지 요구에 직면해 있으며, 동시에 정치권과 언론 집단으로부터는 전문성과 정책능력의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헌신적인 활동가의 충원과 회원의 확대가 동시에 요구된다. 특히 회원의 확대는 시민운동단체들의 재정적 자립도를 강화함으로써 전문성과 활동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넷째, 총선 연대 활동을 통해서 실험한 시민운동단체의 전국적 연대망을 합리적으로 재편하고 재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단체의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총선 연대 활동 과정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민주화와 개혁이 사회적 대세로 부각되어 있고 시민운동단체들이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혁적 시민연대'의 결성은 시대적 요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국적 연대망을 통해 국가적 쟁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동시에 시민운동단체의 내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계획된다면 전국적 연대망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전국적 연대망을 구성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가칭 '시민운동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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