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새 천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막 IMF 체제로부터 벗어난 상황에서 바라보는 21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21세기를 희망의 시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개혁만이 우리의 살길인 것이다. 개혁에 실패한다면 우리 사회에 앞날은 없다. 이 시대 최대의 화두는 개혁이다.
원래 모든 정권은 권력을 잡은 뒤에는 개혁을 주장한다. 국민의 정부는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인 데다 가 김대중 대통령이 개혁적 이미지를 갖고 있고, 또 IMF라고 하는 상황이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높여놓았다. 김대중 정부도 개혁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지만 아직까지는 그 성과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 개혁이다. 유감스럽게도 정치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의 정서, 언론의 비판과 지적, 정치권의 반성과 다짐과는 달리 성과가 하나도 없었다.
새롭게 태어나기는커녕 낡은 정치의 추악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국회는 내내 헛돌았고 여야는 사사건건 팽팽하게 맞서기만 했다. 6.4 지방선거를 비롯해서 몇 차례의 재, 보궐선거에서는 지역감정과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렸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높았던 터에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자 국민소환제 주장이 나오고 국회의원들을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정치불신은 냉소주의나 무관심에 머물지 않고 정치에 대해 경멸하고 환멸을 느끼는 상황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국민이 정치를 증오하는 단계가 될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고비용 정치구조' 폐해의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선진국의 여러 나라들처럼 돈이 적게 드는 선거문화의 정착과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
선진국의 깨끗한 선거문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정치자금 등으로 오랜 기간 동안 홍역을 치러 왔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제도 개선과 개혁을 향해 걸어온 결과 오늘날의 깨끗한 정치풍토를 이룩할 수 있었다. 또 최근의 정치현실은 유권자인 우리에게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를 자문케 한다.
선거 때마다 외쳐 온 정치권의 자정선언은 오히려 '돈 많이 쓰는 선거'로 의미를 상실해왔다. 고비용 정치구조는 정계는 물론이고 재계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주권자로서의 각성과 함께 주권재민의 민주사회를 위한 유권자의 역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정치개혁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본 후 정치개혁을 위한 정치관계법 즉, 선거제도·정당제도·정치자금제도 및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능과 역할 등에 대한 개혁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선거제도에 있어서는,
① 지역주의 투표 행태 개선방안.(정당별 의석의 지역편중현상 완화, 지역주의 심화해소 등) ② 선거운동의 기회균등 제고 방안.(정치 신인의 원내진입 장벽 해소, 선거운동 방법 개선, 현역의원과 원외 입후보자 간 제도적 차별 극복 방안 등)
③ 선거의 공정성 보장 방안.(당내 후보자 공천의 민주화 방안, 후보자의 정보공개와 검증기회 확대 방안 등)
④ 선거 비용에 대한 국민신뢰 제고 방안.(법정 선거비용과 국민 체감비용의 차이 해소, 국민 불신 해소 방안 등)
⑤ 정책경쟁 활성화 방안.(인신공격 보다 정책·정견으로 경쟁하는 풍토 조성 등)
⑥ 기타 선거제도의 개선 방안
⑦ 선관위의 기능과 역할 제고 방안 등에 대해서 살펴보고,
정당·정치자금제도에 있어서는,
① 정당운영의 민주성 확보와 정책 정당화 방안.(공직선거 후보자 공천의 민주화, 정책 정당화, 고비용 정당구조의 개혁 등)
②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의 투명화 방안.(정치자금 수입·지출 회계보고의 진실성 확보, 정경유착의 고리 단절 방안, 정치자금 조달의 정당 간 형평성 제고 방안 등)
③ 기타 정당·정치자금제도의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겠다.
Ⅱ. 정치개혁의 본질과 과제
1. 정치개혁의 본질
(1) 권력 분산과 합리적 재조정
권력은 그 자체가 스스로 집중·확장·지속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중요한 과제는 국가기구 내에서 어떻게 권력을 정의하고, 분산하며,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관계, 정보기구의 역할,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 행정부와 정당의 관계 등에 대한 명확한 재 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2) 개혁주체의 형성과 인적 청산
새로운 권력은 새로운 사람에 의해 가동되어야 한다. 민주정부에 민주적인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국민의 정부에는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새 천년의 단초는 민주화운동의 정통에 서 있고 현실정치에 대한 적응훈련이 완결된 개혁적 미래형 정치인이 열어 가야 한다.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 정립을 위해 민주화의 정통성이 요구되며, 안정과 균형의 확보를 위해 현실 적응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개혁주체의 형성 과정에서는 낡은 세력을 청산하는 인적 청산작업이 불가피하게 동반된다.
(3) 국회 권능의 활성화
역사적으로 대통령과 행정부가 권력의 상징이라면 국회는 이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지키는 민주주의의 보루로 기능해 왔다. 따라서 국회가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감독하는 독자적인 권한을 확보하는 것은 정권교체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2. 정치개혁의 현 단계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출범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의미가 크다는 것이 정권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민주 정부의 출범과 효율적인 국정 운영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IMF 체제에서 권력을 넘겨받은 김대중 정부의 올바른 국정 운용 기조는 가치관의 전환을 바탕에 깐 개혁의 추진이어야 했다. 업적 쌓기보다는 토대 만들기, 다시 말하면 5년 임기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국가 발전의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김대중 정부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개혁의 목적이 단순히 IMF 경제 위기 극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은 새로운 국가 발전을 모색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체제와 운영 원리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새로운 개혁 이념과 발전 방향은 IMF 사태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었던 두 갈래의 국가 발전 노선, 즉 관치 경제로 대변되는 신중상주의뿐만 아니라 시장만능주의를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까지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경제와 참여민주주의의 균형 발전이 개혁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 IMF 위기는 일시적인 외환위기 때문에 닥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부실이 IMF를 불러왔다. 따라서 땜질 식의 임시방편적 개혁이 아니라 사회 운영 원리와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에 정치권이 책임이 있고 또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도 정치개혁은 필수적인 과제였으나 정치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 개혁 논의는 정치 부문의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 등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로만 접근하는 듯한 경향이 강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정치 실종, 민주주의 포기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규모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정치개혁을 정치권에게만 맡긴 것도 문제였다. 국민과 함께 추진하지 않고 정치권에게만 맡겼으니 아무 성과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3. 정치개혁을 위한 과제
(1) 기득권의 포기
정파적 이해관계가 각축하는 상황에서 정파적 논리나 기득권에 집착해서는 정치개혁이 추진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집권여당이 먼저 자기 권한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권력을 민주화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나 당 총재직 이양 등 이른바 '2선 후퇴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개혁세력의 약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책임정치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정치적 혼란만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집권여당의 총재로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2) 개혁주체의 형성
개혁을 위해서는 정책, 인물, 조직의 3박자가 필요하다. 정책은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인물은 개혁정책을 실천하며 조직은 실천을 조직적으로 담보한다. 지금 여권에서는 가칭 '새 천년민주신당'을 중심으로 개혁주체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신당에는 민주화운동 등을 통해 개혁의지가 충분히 검증된 인물과 21세기형 전문지식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전문가, 정치과정에서 통합과 조정력을 발휘할 숙련된 정치가 등 3자가 한데 모일 것이다. 정당이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을 충원하여 정당 운영을 활성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러나 외부세력의 충원은 정당 내부의 민주화와 맞물려 이루어질 때 그 효과를 기약할 수 있다.
(3) 정당의 민주화
정당은 같은 이념과 정책을 가진 일군의 정치가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모인 사적 결사이다. 정당은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내적으로는 민주적 규칙을 준수하면서 대외적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권위주의적 통치가 지속됨에 따라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대중정당이 존재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 형성될 수 없었다. 이제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민주정부가 수립되어 근대적 대중정당이 출현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이 마련되었으므로 정당을 민주화해야 한다. 정당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당의 재정운영과 정책결정의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공직후보를 추천하는 공천과정이 민주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며 정책의 결과에 대하여 국민 앞에 책임지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한다.
(4) 개혁입법 및 정치관계법 개정
국가보안법 개정, 부패방지법, 인권법, 의문사 진상규명법, 민주화운동 명예회복법 제정 등 대표적인 개혁입법 과제들이 아직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국회법 등 정치관계법도 논의만 무성한 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정치개혁의 현주소를 보여 주고 있는 지표들이다. 일부 수구적 정치세력들은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바라는 절대다수의 국민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대강의 원칙과 방향이 국민적 공감 속에 성립된 만큼 개혁입법과 정치관계법 개정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5) 개혁 대연합의 구축
모든 정당, 모든 사회단체가 개혁의 방향과 과제에 합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공통의 개혁과제'에 동의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와 협력하여 이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개혁적 시민운동단체와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개혁 대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그 동안 정부는 개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안정을 모색하는 이중정책을 추진해 왔다. 개혁세력과 연합하여 개혁을 추진하면서 보수세력과 타협하여 정국 안정을 도모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이중전략은 개혁도 놓치고 안정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광범위한 사회적 개혁세력과 연대하여 국민과 함께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개혁적 기반 위에서 정국을 안정시키는 ‘개혁 대연합’이 개혁과 안정을 가능케 하는 전략이라고 본다.